자그마한 몸집으로 기동대원들을 헤치고 들어가 항의의 목소리를 외친다. 배제하려고 대치하는 기동대원들은 증손과 같은 나이다. 그 대원들에게 타이르듯이 말을 건다. “이 기지는 사람을 죽이는 거잖아”
올해 91세. 요코타 치요코 씨는 일주일에 몇 번 기노완시(宜野湾市)에서 찾아온다. “코로나 19때문에 집에만 있어보니 몸이 움직이지 않게 되어서……, 여기에 와서 다시 기운이 났어요”하며 빙긋이 웃는다.
전쟁전, 목수였던 부친과함께 이민으로 사이판 섬에 건너갔다. 3천 평이나 된 토지에 부친이 직접 큰 집을 지었고 살림살이가 넉넉했다고 한다. 그러나 16 살 때 미군이 사이판 섬에 상륙해 생활은 일변했다. 3개월 동안 산 속에서 도망쳐다니며 기적적으로 목숨을 부지했다. 미군의 공격으로 막다른 처지에 몰려 주민들이 반자이(만세) 쿠리후(절벽)라는 절벽에서 잇달아 뛰어내리는 것을 밑에서 보았다. “우리 모두가 죽은 것이 당연하다는 교육을 받고 있었으니까.” “시끄럽다고 해서 아기까지 죽이는 것을 일본군 병사에게 강요당했다.” 아버지와 오빠, 그리고 친척 두 명을 사이판 섬에서 잃었다.
2014년 사이판 섬에서의 위령제에 참석했을 때 신문 기사로 헤노코 신기지 문제를 처음 알게 됐다.
“오키나와를 괴롭히는 일본을 독립국가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는다. 사법의 힘으로 어떻게 해서든 오카나와를 지켜 주고 싶다.” 몸도 머리도 여전히 정정하시는 90대다.
(캠프 슈워브 게이트 앞)
아침 8시반부터 약40 명이 게이트 앞에 연좌 농성해 항의의 목소리를 외친다. 94세인 시마부쿠로 후미코 씨도 휠체어로 맨 앞줄에 지리를 잡았다. 약20분으로 기동대원에게 배제당했으나 자재를 반입하는 차량을 향해 “바다를 파괴하지 마라!” “불법 공사를 멈춰라!”고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12시, 오후 3시에도 반입이 있어 총146대가 기지 안에 들어갔다.
(류큐시멘트 아와 부두 앞)
약40명이 부두 입구와 출구로 나뉘어 항의 시위를 벌였다. GoGo 드라이브 멤버의 차량도 참가해 토사를 운반하는 덤프차의 운행을 늦췄다. 오전에는 석탄선이 착안해 있어서 토사 반출 작업은 없었으나 547대분의 토사가 구내의 일시적인 보관소에 쌓아 올렸다. 오후 4시가 지나 운반선이 착안하며 253대분의 토사가 실려졌다. 밤 8시 가까이까지 작업을 하는 것이 예사가 되어 있다.
(모토부초(本部町) 시오카와항(塩川港))
오전 중에는 파도가 높아서 바지선이 착안하지 못해 작업은 없음. 오후 2시로부터 토사 반입이 시작되어 저녁 5시까지 덤프차 72대분의 토사가 바지선에 실려졌다.
오늘 현재까지의 덤프차 총수 토사량 전체와의 비율
이러한 매립된 토사양의 수치는 덤프 대수로 해아린 것이고 참고치수다.
2018년 12월부터 2019년 12월말까지 반출된 덤프차량의 대수 114,601대(전체 비율1.39%)
27(토) | 29일(월) | 30일(화) | 7월1일(수) |
2일(목) | 3일(금) | |
아와(安和) | 847 | 0 | 0 | 253 | ||
시오카와(塩川) | 0 | 333 | 0 | 0 |
현재까지 덤프 총수 |
토사량
※① |
체적으로 환산
※② |
전체 비율
※③ |
192,570대 | 962,850 t | 481,425㎥ | 2.3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