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화한 말씨로부터 이 사람의 과감한 활동행력은 감히 상상이 안된다. 단지 취재를 하고싶다라는 신념만으로 말도 안통하는 동남아시아와 한국에 뛰어들어 간다. 나카이 신스케(53) 씨는 미군기지로 농락당하는 주민, 억압당하는 사람들을 찍어오고 있는 사진작가다. 스무살 때에는 아르바이트로 백로의 사진을 찍었다. “백색화한 흑로는 왜 아마미섬 이남에 더 많이 서식하고 있는가” 를 테마로.
미군기지에 관심을 돌리게 된 계기는 오키나와의 디스코장이었다. 미군들이 우글거리는 장내에서 벗은 몸으로 춤을 추는 젊은 필리핀 여성의 모습이 머릿속에 박혔다. 25살 때, 필리핀 수빅해군기지 주변의 슬럼가를 찾았다. 불발탄을 주워서 생활하는 가족과 미군병에 몸을 파는 외엔 살아갈 방도가 없는 여성들을 목격했다. 아메라지안 (미군과의 사이에 태어난 아이) 이 넘쳐 있었다. 감당하기 벅찬 눈앞의 현실에 그만 아연실색했다. “나한테는 무리다. 하지만 보도사진은 찍어야 한다.”
2005년 한국의 평택 대추리에 거주하는 농민들이 모집하는 지킴이에 자원했다. 미군기지를 이전한다고 마을전체가 철거당하려고 하고 있었다. 빈집이 된 농가에 들어가 살며 한국전체를 뒤흔든 시민운동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일본인은 자기 한명. 강제철거가 진행되자 대추리는 바로 고립이 되었다. 마을밖으로 나가기도 쉽지 못해, 먹을거리도 끊겨 마을회관 안에 숨어들어 먹을 것을 찾기도 했다. 할머니한테 들켜 큰소리로 야단을 들었다. 쫓겨날 것을 각오하고 있던 그 다음날, 식사가 나왔다. 한분이 말해 주었다. “일본에서 지원하러 와 주었으니까.”
미군기지에 농락당하고 있는 것은 오키나와도 마찬가지. “기지건설 반대파를 찍으려고 생각지는 않는다. 사람의 사는 모습을 찍고 있을 뿐.” 편집된 영상으로부턴 그의 그런 상냥한 마음이 배어나와 마음을 친다.
태풍 8호로 인해 배가 착안하지 못하여 아와, 시오카와 두곳다 토사반출작업은 중지되었다. 게이트앞도 태풍대책이 취해져 이날 자재반입은 없었다.
오늘 현재까지의 덤프차 총수 및 토사량 전체에 대한 비율
이러한 매립된 토사양의 수치는 덤프 대수로 해아린 것이고 참고치수다.
2018년 12월부터 2019년 12월말까지 반출된 덤프차량의 대수 114,601대(전체 비율1.39%)
22일(토) | 24일(월) | 25일(화) | 26일(수) |
27일(목) | 28일(금) | |
아와(安和) | 271 | o | ||||
시오카와(塩川) | 0 | 0 |
현재까지 덤프 총수 |
토사량
※① |
체적으로 환산
※② |
전체 비율
※③ |
236,834대 | 1,184,170t | 592,085㎥ | 2.9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