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장의 지도에 빨려 들어갔다. 예전에는 오우라사키(大浦崎 캠프 슈워브내의 일각)에 취락이 있었던 것을 나타내는 자료. 1930년대의 것이라고 추측되는 낡아빠진 지도에서는 후쿠치강(福地川)에 따라 이름이 들어 있는 가옥이 즐비하게 늘어서고, 가게 듯한 옥호(屋号)를 여러 개 확인할 수 있다. 여기는 야두이(屋取)취락이라고 부르고 자료에 따르면 1921년에는 31세대, 140명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오우라만으로 고기잡이를 하고, 산의 산물로 삶을 영위하는 모습이 상상할 수 있다. 풍부한 자연에 둘러싸인 생활은 가난해도 평온한 나날이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패전과 동시에 생활은 일변. 이 부근 일대는 지역마다 구분된 세 개의 수용소가 되어 주민 수만명이 강제적으로 이주당했다. 야두이 취락의 사람들도 수용소에 수용됐을 것이다.
미군은 오키나와현민의 토지를 잇달아 강탈하여 기지를 건설. 수용소에서 해방된 사람들의 눈에 비친 것은, 기지 안에 있는 자신의 집이었다. 1956년, 캠프 슈워브의 건설로 야두이 취락도 소멸했다.
나고시 (名護市)의 조사에 따르면, 야두이 취락의 형성은 400년 전의 류큐왕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의 유적이 아직 이곳 저곳에 남아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나고시유적조사단의 출입 허락은 단 한번만이다. 다른 미군기지와 같이, 선조의 무덤도 기지 안에 있다. 64년간, 아무도 성묘조차 갈 수 없는 상태가 계속하고 있다.
(캠프 슈워브 게이트 앞)
어제와 달리 쌀쌀한 날씨. 약 30명이 연좌농성을 했다. 여성들 중심으로 노래를 부르고 분위기를 띄웠다. 반입 차량은 이전에 비해서 격감해서 1회당 50대 전후. 시민들이 강제적으로 이동되어 게이트가 열리면 20분 정도로 반입은 종료한다. 그런 나날이 계속한다. 123대가 자재를 반입했다.
(류큐시멘트 아와 부두)
빈 운반선이 없었기 때문인지, 10시반에 적재 작업은 종료됐다. 쇄석장에서의 토사 반입도 오후 2시에 끝났다. 실려진 토사는 운반선 1척에 덤프트럭 280대분.
(모토부쵸 시오카와항)
1주일 만에 선박이 착안해서 반출 작업이 시작됐다. 모토부 시마구루미의 멤버들 10명이 아침 7시부터 항의 시위를 전개. 일시, 항의로 덤프트럭이 정체한 사태가 되어서, 아와 기동대원 20명이 달려왔다. 더욱 10시 반에도 기동대원 20명이 달려왔다.
2척 동시 적재가 오후4시반까지 계속되어, 바지선 4척에 516대분의 토사가 실려졌다.
오늘 현재까지의 덤프차 총수 및 토사량 전체에 대한 비율
매립된 토사양의 수치는 덤프 대수로 해아린 것이고 참고치수다.
2018년 12월부터 2019년 12월말까지 반출된 덤프차량의 대수 114,601대(전체 비율1.39%)
753 | 7일(토) | 9일(월) | 10일(화) | 11일(수) |
12(목) | 13일(금) |
아와(安和) | 0 | 280 | ||||
시오카와(塩川) | 0 | 516 |
현재까지 덤프 총수 |
토사량
※① |
체적으로 환산
※② |
전체 비율
※③ |
273,700대 | 1,368,500t | 684,250㎥ | 3.3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