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앞)
폭염 속에서 약 30 명이 게이트 앞 연좌 농성. “오우라만(大浦湾)을 파괴하지 말라.” “신기지 반대의 민의가 드러났다”라고 구호를 반복했다. 도로 반대쪽에서는 의료 노조 간호사 몇명이 지키고 있다. 실제로 매년 수십 명이 더위로 인해 컨디션 을 해쳐 치료를 받지만 그래도 또다시 항의에 나온다. “아이들을 위해 후손을 위해 기지건설은 기필코 막겠다” 라는 강한 의지가 이들을 게이트 앞으로 모이게 하는 것 같다. 믹서 트럭과 덤프 등 157 대가 기지에 들어갔다.
(류큐 시멘트 아와(安和) 부두 앞)
오우라만(大浦湾)에서 항의를 계속하는 카누 팀도 합류하여 바다와 육지에서 시위를전개했다. 폭염 속 게이트 앞에서 약 30 명이 토사를 반입하는 덤프를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시위 행진을 계속했다. 그 때 남자 한분이 열사병으로 쓰러져 치료를 받았다.
카누 팀 13 척이 부두를 오가는 운반선에 접근하여 토사 적재 작업을 대폭 지연시켰다. 아침 7시부터 저녁 5시 이후 까지 작업은 계속되어 덤프 628 대분이 운반선에 적재됐다.
운반선 3 척이 오우라만(大浦湾)을 향해 출발했다.
(모토부쵸 시오카와(塩川) 부두 앞)
이 지역 멤버들 10 여명이 토사반입 덤프를 향해 항의를 계속했다. 인터넷 우익으로 보이는 2 명이 계속 우리의 모습을 촬영하고 있어서 의도를 물었지만, 애매
모호한 대답만 돌아왔다. 무단으로 영상을 인터넷에 올릴 경우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을 전했다. 결국 그들의 정체는 알 수 없었다.
작업은 오전에 종료되어, 덤프 173 대가 운반선에 토사를 적재했다.
(기타)
지금으로 부터 60년 전 6 월 30 일, 이시카와시(石川市) (현 우루마시)의 미야모리 (宮森) 초등학교에 미군 제트기가 추락하여 아동 12 명, 주민 6 명이 사망하고 200 명 이상이 중경상을 입었던 전후 최대의 미군기 사고에 대한 위령제가 30 일 같은 학교에서 열렸다. 당시 부상당한 초등학생과 유가족 수백 명이 참가했다. 당시 제트기 조종사는 낙하산으로 탈출해서 무사했다. 미군 통치 시대의 사고였기 때문에 원인 규명에 긴 시간이 걸려서 피해자에 대한 보상 금액도 소액이었다. 참가자 전원은 희생자들에 대해 묵념하며,기억의 계승 및 다시는 사고를 반복하지 않을 것을 맹세했다. 미군기의 사고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재작년 12 월 후텐마(普天間) 제 2 초등학교 운동장에 미군헬기가 무게 7킬로그램의 창틀을 낙하시킨 바 있다. 그러나 미군 헬기는 여전히 이 초등학교의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결코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