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8일 (금) 일본 본토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사진 ‘소녀 역살(轢殺)’ / 네 군데서 50명이 항의 시위

오키나와에서 보낸 한 장의 사진이 일본 본토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사진은 ‘소녀 역살’이라고 불려 순식간에 전국에 퍼졌다. 그 사진을 찍은 보도 사진가인 우레시노 쿄코(嬉野京子) 씨는 그 때 아직도 오키나와에 있어서 미군에게 들키면 살해당할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1965년, 오키나와는 아직 미군의 지배하에 있었다. 날마다 일본 복귀 운동이 고조되고 있는 한편 미국이 베트남에 군사 개입을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우레시노씨는 복귀 운동의 상황을 찍으려고 오키나와에 오는 것을 결심해, ‘조국 복귀 행진단’을 수행하며 4월20일에 기노자촌(宜野座村)으로 다다랐을 때 그 사고와 조우했다.

“아이가 치여 죽었다”고 외치는 소리에 뛰어나가보니 소녀가 학용품을 놓은 주머니를 손에 가진 채 길에 쓰러져 있었다. 즉사였다. 소녀를 내려다보는 몸집이 큰 미군들과 말을 거는 오키나와 경찰관. 놀랍게도 경찰관은 가해자인 미군을 현행범으로 체포하지도 않고 미군차량을 통과시키도록 교통정리를 시작했다. 오키나와가 놓여 있는 실정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사진을 찍으려 했으니 행진단 멤버가 “미군들에게 들키면 살아서 돌아갈 수 없다”고 말렸다. 그래도 “일본 본토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목숨과 바꿔서라도” 라고 꾸준히 간청했다. 허락을 얻어 멤버의 어깨너머로 한 번만 셔터를 누를 수 있게 되었다. 신문에 실린 그 사진은 큰 반향을 불러일켜 오키나와가 놓여 있는 상황이 일본 본토에 널리 알려졌다.

오늘날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 상황이다. 주일 미군 지위 협정에 속박되어 미군 병사로 인한 사고나 범죄에 대한 일본 사법 기관의 대응은 여전히 엉거주춤한 자세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 사진이 호소하는 것은 여태까지 이어지고 있다.

 

 

(캠프 슈워브 게이트 앞)

가꿈 내리는 세찬 빗속에서 약20명이 연좌 농성하며 항의의 뜻을 표했다. 오전, 오후 세 번에 걸쳐 레미콘차 등이 자제를 반입했다.

 

 

(오우라만(大浦湾) 해상 시위)

항의선2척, 카누8정으로 바다로 나섰다. 잇달아 오우라만에 들어오는 운반선 4척을 향해 “바다를 파괴하지 마라” “불법 공사를 그만둬라” 등 소리를 높였다. K8호안에 접안하려 하는 바지선에 카누가 다가가자 해경들이 일제히 우리를 포위하며 30분 정도로 모두가 잡혀 해변으로 연행되었다.

 

 

(류큐(琉球) 시멘트 아와(安和) 부두 앞)

햇살이 여전히 강하다. 점심 휴식도 없이 연달아 들어오는 덤프차에 약20명이 입구와 출구로 나뉘어 항의 시위를 이어갔다. 오가는 차나 버스를 향해 손을 줄곧 흔든다. 완전히 친숙하게 된 항의 시위에 경적을 울리며 격려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반입 작업은 여느 때보다 한 시간 빨리 종료. 그럼에도 849대분의 토사가 운반선 3척에 실렸다.

 

 

 (모토부쵸(本部町) 시오카와항(塩川港))

‘모토부쵸 시마구루미(섬 사람 다 함께 하는) 모임’ 회원 몇 사람만으로 항의 시위. 경찰관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514대분의 토사가 바지선 4척에 실려져 헤노코를 향해 출항했다.

 

오늘 현재까지의 덤프차 총수 및  토사량 전체에 대한 비율

매립된 토사양의 수치는 덤프 대수로 해아린 것이고 참고치수다.

2018년 12월부터 2019년 12월말까지 반출된 덤프차량의 대수 114,601대(전체 비율1.39%)

12일(토) 14일(월) 15일(화) 16일(수)
17(목) 18일(금)
아와(安和) 665 592 530 773 718 849
시오카와(塩川) 0 510 512 511 516 514

 

현재까지
덤프 총수
토사량

※①

체적으로 환산

※②

전체 비율

※③

244,034대 1,220,170t 610,085㎥ 3.020%
※① 덤프차량 한대당 적재량을 평균 5톤으로 계산
※② 토사의 비중을 2로 계산
※③ 계획되어 있는 전체 매립 토사량 20.200.000㎥</h 에 대한 오늘까지 투입된 토사량의 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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